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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피로사회

솔벤트 2012. 12. 9. 00:46


/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출판



피로사회

저자
한병철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12-03-0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성과사회는 우울증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피로사회』는 현대사...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한국인이면 누구나 자기를 착취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즉각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는 서문이 인상적인 <피로사회>는 피로사회/우울사회로 나뉘어 과거 철학자들의 철학이 요즘 시대에 들어서 맞지 않음을 주장하며 그들의 철학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화하고 도핑사회로까지 발전하는 오늘날엔 성과주체인 자아는, 더이상 면역학적인 치료와 대응이 불가능하고 긍정성 과잉의 사회속에서 자기를 착취하고 신경증적 질환을 앓고 있다. 자아-피로가 아닌 우리-피로를 통해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데 솔직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성과사회로부터 벗어나 느긋함과 '인간성'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책이 어려워 한 번은 읽다가 잠들어버려서 다시 처음부터 읽으며 내용을 간략히 적어나가려 했다. 내용 중 직장내 따돌림이야기는 갑자기 나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아 연결구조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철학이 현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을 보여주며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모두가 함께 직시하고 변화시키려 노력하면 그 다음엔 어떤 사회가 도래하게 될지 기대하고 싶다.


------------------------------  N O T E ------------------------------


* 신경성 폭력

신경증적 질환인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근 등은 긍정성의 과잉이 원인이다.

과거 면역학에서는 공격과 방어(타자의 맹목적 방어)가 주였으나, 이질성은 '차이'로 대체되어 같은 것으로 - 타자성은 상투적인 소비주의로 전락하여 이국적인 것으로 인식, 소멸되었다.

오늘날은 모든 영역이 난교상태(교환/교류)이며 이질성의 실종은 부정성이 많지 않은 시대를 의미한다. 과잉생상, 과잉가동, 과잉 커뮤니케이션 모든 비만상태! 보드리야르의 적계보(늑대→쥐→해충→바이러스)는 폭력계보와 같지 않다.

긍정성의 폭력은 '박탈' 하기보다 '포화'시키며,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고갈' 시키는 것이다.

신경성 폭력은 시스템에 내재하는 폭력이다.


* 규율사회의 피안에서

푸코의 규율사회성과사회로 변화했다. 주민은 복종적 주체에서 성과주체가 되었다.

성과사회는 금지어(부정성)에서 벗어난다. 

금지, 명령, 법률→프로젝트,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

광인, 범죄자→우울증 환자, 낙오자

능력의 긍정성은 당위의 부정성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당위→능력 p.25

성과주체는 규율에 단련된 상태를 유지한다. 생상성 향상 측면에서 당위, 능력 사이에는 단절이 아닌 연속적 관계가 성립한다.


알랭 에랭베르 Alain Ehrenberg: 우울증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명령이 원인이나 인간적 유대 결핍도 원인이다.


성과를 향한 압박이 탈진 우울증 초래. 후기근대적 노동사회의 새로운 계율이 된 성과주의의 명령.

니체의 주권적 인간이 아닌 노동만 하는 최후의 인간. 그는 가해자이며 피해자다. ① 일과 능력의 피로 ② 파괴적 자책과 자학

지배기구 소멸은 자유와 강제가 일치하는 상태이다. 성과주체는 성과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자기착취.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표출이 성과사회의 심리 질병이다.


* 깊은 심심함

멀티태스킹야생에서의 생존을 위한 필수 기법으로 퇴화를 의미한다. 좋은 삶(성공적 공동체의 삶 포함)에 대한 관심은 생존관심에 밀려나고 있다.

문화는 깊이 주의할 수 있는 환경을 필요로 한다. 깊은 주의→과잉주의

과잉주의 Hyper attention: 산만함이 특징. 깊은 심심함을 허용하지 못함.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 걷기가 직선적 운동이라면 장식적 동작으로 이루어진 춤은 성과원리에서 벗어난 사치가 된다. 

사색적 삶: 사물들이 존재하고 어떤 조작 가능성이나 과정성에서도 벗어나 있음에 대한 경이감. 근대 데카르트주의는 '경의감'을 '회의'로 대체. 깊은 사색적 주의 거장은 폴 세잔. 사색적 집중 상태에 이르지 못한다면 시선은 불안할 뿐 아무것도 표현해내지 못할 것. 예술은 '표현 행동'. 평온의 결핍.


* 활동적 삶

하이데거/한나 아렌트는 활동적 삶, 영웅적 행동주의를 옹호. 하이데거는 죽음/한나 아렌트는 탄생에 초점.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영웅적 행동. 탄생은 인간에게 그러한 행동의 의무를 부과. 종교적 차원의 승화. 사유도 뇌의 기능으로 전락. 모든 활동적 삶이 노동이 됨(근대). 활동이 생물학적 과정으로 보일 것.

후기근대 노동하는 동물은 노동을 통해 인류의 익명적 삶 과정에 용해될 만큼 자신의 개성이나 자아를 포기하지 않는다. 동물적이지 않음(느긋함이 부재하기에). 과도하게 활동적이고 신경과민 상태. 노동사회가 개별화로 성과사회/활동사회가 됨.

왜 그토록 초초자고 부산한 상태에 빠지는가?

근대는 신. 피안 믿음. 현실에 대한 믿음도 상실→극단적 허무, 존재의 결핍 앞에서 초조와 불안이 생김. 자아는 완전히 개별적으로 고립되어 있고 종교도 힘이 없다. 세계의 탈서사화. 과잉 활동과 노동과 생산의 히스테리는 극단적으로 허무해진 삶, 벌거벗은 생명에 대한 반응이다. 계속 새로운 강제를 만들어 낸다. 자신을 착취한다. 지배없는 착취.


* 보는 법의 교육

니체는 교육자 도움이 필요한 것으로 1 보는 것 2 생각하는 것 3 말하고 쓰는 것이라 했다. 위 목표는 '고상한 문화' 정신있음. 사색적 삶의 부활. 모든 것을 긍정하는 수동적 자기 개방이 아닌 밀려오는 자극에 대한 저항이고 시선의 주체적 조종이다. 주체성으로 어떤 활동과잉보다 활동적. 활동과잉은 도리어 모든 자극과 충동에 순종하는 과잉 수동성으로 전도된다. 자유대신 새 구속. 진정 다른것으로 전환이 일어나려면 중단의 부정성이 필요하다. 오늘날은 중단/막간/막간의 시간이 매우 적다.

p.50 전반적인 가속화와 활동과잉의 흐름속에서 우리는 분노하는 법도 잊어가고 있다. 

넓은 시간적 지평을 용납치 않는 가속화, 활동과잉. 분노는 현재에 총체적 의문을 제기한다. 분노의 전제는 중단이다. 분노는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이며 오늘날엔 분노대신 짜증과 신경질만 확산되고 있다.

짜증과 분노(전체의 부정)≒공포(특정 대상)와 불안(존재자체의 문제)

오늘날 사회의 전반적 긍정화는 모든 예외상태(분노 포함)를 흡수해 버린다. 사유가 '항체와 자연적 면역성으로 이루어진 그물' 이라면, 부정성의 부재는 사유를 '계산'으로 변질시킨다. 긍정화 추세 속에서 사회도 개인도 '자폐적 성과기계'가 된다.

돌이켜 생각하기(하지 않을 수 있는 힘. 부정성)↔긍정성의 과잉=계속 생각해 나가기

무위의 부정성은 사색의 본질적 특성. 극도의 능동적 과정.


*바틀비의 경우 - 허먼 멜번의 단편<필경사 바틀비>

바틀비의 의욕상실과 무감각.

규율사회의 상징인 두꺼운 담장, 감옥은 즉 무덤이다. 죽음, 복종적 주체. 후기근대 성과사회 표징인 우울증 등장 이전. 아직 관습과 제도사회 속 바틀비는 우울한 자아-피로를 초래하는 과중한 자아의 부담을 알지 못한다. 바틀비는 멍하고 무감각. 세계나 의미와의 연관성 상실. 바틀비의 실종은 죽음으로 향하는 부정적 존재.

(우울증: 자신이 부족하다, 열등감. 실패에 대한 불안. 끝없는 자책과 자학)

카프카 <단식곡예사>그의 죽음으로 빈자리는 어린 표범이 차지하고. 표범은 오직 생生 자체에 희열을 느끼는 존재. 바틀비의, 월가의 이야기는 '탈진'의 이야기다.


*피로사회

성과사회는 서서히 도핑사회로 발전. 도핑은 성능없는 성과를 가능하게 한다. 공정성만 있다면 신경향상제 복용은 문제시되지 않는다.

생동성 - 매우 복잡하나 생명기능과 생명 활동이 될 뿐.

성과사회 이면엔 극단적 피로, 탈진 상태를 야기한다. 과도한 성과의 향상은 영혼의 경색으로 귀결된다. 성과사회 피로는 개별화, 고립 시키는 고독한 피로다. 이런 분열적 피로는 인간이 '볼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상태'로 오직 자아만 가득하다. 피로는 폭력이다. 공동체, 공동의 삶, 친밀함, 언어도 파괴한다.//자아피로. 고독하고 세계가 없음.

한트케. 보는/말 잘하는/화해시키는 피로. 모차별성 공간. 세계를 신뢰하는 피로. 자아의 개방. 접근을 허락하는 피로. 줄어든 자아, 세계의 증대.

'근본적 피로'는 무기력이 아니다. 영감을 주고 정신이 태어난다. 무위! 그리고 우회. 특별한 무차별성으로 '우애의 분위기' 개별적 공동체. 우리-피로 나는 너한테 지치는 것이 아니라 너를 향해 지치는 것. 영감을 주는 피로는 부정적 힘의 피로, 무위의 피로. 막간의 시간으로 쓸모없는 것의 쓸모. 놀이의 시간. 평화.